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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개같은 날의 오후

왓챠피디아에서 예상 평점이 높길래 찜만 해놓고 방치하다가 갑자기 끌려서 보게 되었다. 왓챠에 있다.

제목도 너무 흥미롭고 가끔 옛날 영화를 찾아서 보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 영화가 딱이라고 생각했다.

 

포스터는 개판이네ㅋㅋㅋ영화에서 개는 안 나온다.  왓챠에서 영화 선택할 때는 여성들이 뭉쳐서 위를 올려다보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더 나을 것 같네. 그리고 여성 중심 영화라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주부, 부녀회장, 술집 여자, 트랜스 젠더, 독신 여성 등등. 이 사람들이 뭉쳐서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포 주의)

 

배경은 1994년? 여름, 서울이다. 영화 개봉이 95년 가을이라 94년이지 않을까 싶은데... 극심한 더위였던 듯. 불쾌지수가 높으니까 자동차도 때려 부수고 공중전화 기다리다가 머리채도 잡는다. 너무 웃겼던 게 처음 시작이 날씨 브리핑 같은 걸로 시작하는데 '해방 이후 최고의 더위다, '라고 함ㅋㅋㅋ해방이훜ㅋㅋㅋㅋㅋㅋ이런 표현을 언제 들어봤더라ㅋㅋㅋ옛날 영화라는 게 확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리고 들었던 생각이 '실제로 94년 여름이 더웠을까?'였다. 찾아보니 미친 더위였더라고ㅋㅋ역대 폭염일수 1위는 2018년 31.5일이고 2위는 1994년 31.1일이라고 한다. 2018년도 진짜 더웠는데 그거랑 얼마 차이가 안 나는 걸 보면 최악이었을 듯. 올해는 안 더울 것 같긴 하다. 5월인데도 재킷을 여미면서 걸었다. 따뜻할 때는 따뜻해야 하는데 기상이변이 많이 일어나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지금 한 자리씩 하는 중년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것. 내가 잘 알아보는 것도 있는데 어쨌든 아는 사람이 한 바가지 나온다. 그만큼 굉장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다가 인물들이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점은 이정희(하유미)다. 젊은 층에게는 교오오오양?으로 잘 알려진 하유미 씨가 이 영화에서는 고분고분한 부인으로 나온다. 정희는 화장품 외판원을 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데 이 썩을 놈의 남편 새끼는 화투 치는 도박쟁이에 심술 나면 부인 때리는 폭력남편이다. 심지어 의처증이 있어서 정희를 밑도 끝도 없이 몰아세우며 배를 때리고 벨트로 내려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찌질한 새끼가 열등감에 미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ㅋㅋ나중엔 누워있는 정희 옆에서 미안하다고 어쩌고 사과하는데 지랄하지 말라고 주둥이를 때리고 싶었다. 개극혐 인물이다. 

또 극혐인물이 있는데 영희 아빠다. 영희 엄마(송옥숙)는 그냥 주부고 애 키우면서 산다. 영희 아빠는 전기 배선 기술자였던 것 같다. 이 망할 놈의 새끼는 같은 아파트에 불륜녀가 있다. 아빠가 불륜녀 집에서 나와서 스킨십하는 것을 딸인 영희가 보고 엄마에게 알려주는데 영희 엄마가 딴 여자랑 자고 왔냐며 캐묻고 뭐라고 해도 당당하게 행동한다.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은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하는 것에 있다. 이 새끼는 그런 거 모른다. 그리고 부인 뺨도 때린다. 가지가지하는 새끼다. 얘네 외에도 등장하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찌질하다 못해 짜증유발자들이다. 

 

헤어지자고 했나? 여하튼 대충 그런 정희의 말에 돌아버린 남편은 벨트로 정희를 때리고, 살고자 했던 정희는 아파트 마당으로 도망간다. 마침 그 곳에는 집안의 더위를 피해 밖에서 수박을 먹는 주부들과 부녀회장, 부채질을 하는 남편들이 앉아있었다. 정희는 살려달라며 도망가고 남편은 그런 정희의 팔을 잡고 무지막지하게 끌고간다. 여성들이 옆의 남편들에게 도와달라며 부탁하지만 남의 집 사정에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며 태평하게 오징어나 쳐먹고 부채질을 한다. 눈 앞에서 사람이 끌려가는데도 말이다. 보다못한 여성들이 말리고 마침 술집에서 일하는 윤희(정선경)가 아파트를 나서다가 그 광경을 본다. 욕을 하는 윤희에게 걸레년은 꺼지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고 빡돈 윤희가 가방으로 남편의 머리를 맞추면서 집단 폭행이 시작된다. 영희 엄마도 가담하자 영희 아빠는 말리면서 영희 엄마의 뺨을 때린다. 어쨌든 이리저리 넘어지면서 다른 사람들도 걸리게 되고 넘어지고 개판이 된다. 그러다 경찰이 오고 조사를 받는게 무서웠던 여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간다.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아파트 옥상으로 대피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정희의 남편이 병원 이송중 죽게 되면서 일이 커진다. 기동대까지 출동하며 아파트를 에워싸고 여성들은 옥상에서 기동대와 대치를 한다. 그 전에 밑밥을 많이 까는데 경찰에게 아무리 폭행이나 싸우는 민원을 넣어도 한 번 와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주부들을 잡으려고 기동대까지 빠르고 착실히 보내는 것이 좀 웃겼다. 폭력남편 하나 죽었다고 기동대까지 보낼 일인가 싶은 그런거 어쨌든 정희 입장에서는 정당방위인 사건이지만 정희 남편입장에서는 일 대 다 였고 집단 폭행으로 인한 사망사건이니 뭔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옥상에 있던 할머니가 투신을 한다.

 

이 할머니로 말하자면 영화 초반에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나오는 할머닌데 아들 내외랑 아파트에 산다. 할머니는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사는 사람인데 이 습관으로 가족들과 트러블이 있다. 치매인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아들이 폭발해서 어머니의 물건들을 창문 밖으로 다 던진다. 어머니가 던지지 말라고 손으로 잡은 재봉틀까지도 빼앗아 던져버리고 만다. 재봉틀은 할머니에게 소중한 물건이다. 할머니는 박살난 재봉틀을 주워다가 아무 말없이 옥상으로 가고 이후 여성들이 피신을 온다. 할머니는 소란스러운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이 사건이 남편 구타에 응징한 여자들이 투신으로 경찰 진압에 저항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난다. (근데 할머니는 아들 피셜로 남편이 살아있었을 때 많이 맞고 살긴 했음. 그니까 크게 보면 틀린 기사는 아님) 그러면서 옥상의 여성들은 전국적으로 뉴스를 타고 전국의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시위를 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기동대장인 정보석과의 대립, 여성의 연대 등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대사를 굉장히 많이 친다. 다다다다다 대사의 연속이고 실제로 재밌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대사는 '불알 달린 것들과 이야기가 통하겠냐'였다. 기동대장을 보고 있노라면 이 대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동대장도 극혐 인물 중 하나인데 부인한테도 부하 대하듯 명령하고 윽박지르고 썅년이라는 등 욕을 서슴지 않는다. 그것도 지 속옷이랑 옷 가져오라고ㅋㅋ근데 진짜 웃긴 게 기동대장 부인 영화 끝날 때까지 안 나옴ㅋㅋㅋ즉 옷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막판에는 이제 명령하지 말라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기도 한다. 조금 통쾌...하지만 더 사이다가 필요해.

그리고 중간에 여성 대원이 옥상의 여성들에게 신문이나 담배, 썬캡, 먹을 것을 주는 장면이 좋았다. 그렇게까지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95년도 영화라는 것이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어떻게 트랜스 젠더 여성까지 넣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ㅋㅋ옥상의 여성들이 자신들 중 트랜스 젠더가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는데 그때 뭐라고 하냐면 '남자가 뭐가 부족해서 여자처럼 사냐?' 고 한다. 그때의 인식이 딱 이랬던 거지. 남자가 뭐가 부족해서 여자처럼 사냐. 여자처럼 살면 남편, 아이 뒤치다꺼리 해야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여자라고 색안경 끼고 막대하고, 부인은 때려도 괜찮고, 그럼에도 나에게 잘해야 하고 이런 거지 같은 생활을 견뎌야 했던 게 그때의 여성이였던 거다. 여성에게 결혼 실패는 인생 실패요, 행복 실패라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집안, 결혼에 종속되어 있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요즘은 이혼이 흠도 아니고 못 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빨리 헤어지는 게 자신의 인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할 때가 되어서 하는 것보다 진정 필요로 할 때 결혼을 하는 것이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는 비를 뿌리며 엔딩으로 달려간다. 무더운 시기에 땀을 흘리며 농성을 하던 여성들을 씻겨주고 그곳의 온도를 낮춰준다. 모두가 염원하던 비가 내리면서 갈등이 해소되고 있다. 이건 굉장히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억압받는 존재가 누군지 분명하다. 그 존재를 억압하지 않으면 갈등은 끝이 난다. 계속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억압받는 존재를 계속 억압시켜서 본인이 득을 보고자 함에 있다. 이건 굉장히 이기적인 작태다.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위해 비를 뿌리고 여성 시위대를 등장시킨 것 같다.

결말도 재미있게 깔끔하게 끝나서 좋았다. 바보같은 도둑들은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했지만ㅋㅋ여성들의 시위를 애들 장난같다고 이야기 한 진압전문가에게 똥같은 걸 던지기 위해 있는 역할인가? 나도 모르겠다.

좀 아쉬웠던게 스크롤이 올라갈 때였다. 극중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더라도 영희 엄마, 은주 엄마, 석이 엄마같은 사람들은 이름을 지어주는 게 좋았을 것 같다. 

최고의 인물은 단연 윤희다ㅋㅋ엄청 시원한 말투와 사이다를 계속 쏴주는 인물이다. 정선경 씨가 연기를 너무 찰떡같이 하셔서 잘 보았다.

 

보고 너무 재밌어서 엄마에게 추천을 했다. 너무 재밌게 봤다고 하셨다ㅋㅋ엄마가 나보다 더 공감하고 할 말이 많겠지? 이건 진짜 재미로봐도 좋다. 많이들 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