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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년 BIFF에서 선택한 영화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이다.

사실 시간이 되는 게 이 영화밖에 없었다ㅋㅋㅋ

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냐면 제목이 일단 끌렸고, 주인공이 칸에서 연기상을 받았다고 하길래ㅋㅋ상 받는 거에 진심이라 선택했다.

*스포일러 포함

영제는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사람? 정도 생각하면 되려나

영화본 직후에는 영제가 낫다 싶은데 글 쓰는 지금은 한국어 제목이 낫다.


제목을 보고 얼마나 최악인 모습을 보여줄까 생각했는데 최악은커녕 일반적인 2030대를 보내고 있는 성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부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게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일지라도 한 번쯤 해보는 고민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단연 연출이다. 연출이 좋아서 기억에 오래 남을 영화다.

먼저 타인의 결혼식에서 에이빈드를 만났을 때의 모든 상황

 

남자 친구 악셀의 신작 발표회? 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걷던 율리에가 모르는 사람의 파티에서 에이빈드를 처음 만나고 그와 이야기하며 바람을 합리화할 때ㅋㅋ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서로 파트너가 있는 상황에서 첫눈에 끌리게 된다. 둘은 바람은 절대 안되니까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여서 우리는 바람이 아니라고 합리화를 하는데...그게 너무 웃겼다. 서로를 깨물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장면을 지켜보는데 이게 왜 바람이 아니냐고ㅋㅋ 서로가 이미 원래 있던 파트너에게 질렸던 차에 있었던 일이니까 그냥 '정리하고 둘이 만나지' 라는 말이 차올랐다.

사실 첫 눈에 끌리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잖아? 안 보고 싶은데 계속 눈길이 가고 말을 걸고 싶고 더 알고 싶은 마음이 클 것 같다. 그리고 악셀보다 에이빈드가 율리에와 외형적으로 더 어울렸다. 그래서 둘이 앉아만 있는데도, 침대에서 서로를 바라보는데도 긴장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 모습의 절정이 바로 율리에가 피우는 담배연기를 에이빈드가 간격을 두고 흡입하는 부분이다. 예고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약간 슬로우가 걸리면서 배경음악과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그리고 관계의 시작이 잘 보이는 장면이라 좋았다.

 

그다음 악셀에게 헤어짐을 고하기 직전 불을 켜자 모든 것이 멈추고 율리에만 움직였던 그 장면
이 장면이 영화에서 단연 최고가 아니었을까
결혼, 아기 등 가치관의 차이가 보이는 악셀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랑으로 다가온 에이빈드를 인정하려 달리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달리는데 왜 내가 다 기분이 좋아지는지ㅋㅋㅋ분명 바람인데 말이지... 노르웨이 오슬로의 풍경과 음악, 배우의 감정연기가 찰떡이었고 에이빈드와의 키스도 좋았다. 그리고 모두가 멈춘 도시에서 둘만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는 게 예뻤다.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이 장면부터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악셀의 무아지경 드럼 공연
췌장암 판정을 받은 악셀이 병실에서 헤드셋을 끼고 무아지경으로 드럼을 치던 부분은 카메라 워크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췌장암이면 사실 완치되기 힘들기 때문에 악셀의 마지막일 것 같은 열정이 느껴졌고 악셀이 하이헷을 치면 그쪽으로 줌인 줌아웃이 되니까 역동적으로 보여서 좋았다. 

이 외에도 평화로운 오슬로의 도시, 캠핑장 모습 등 낯설고 여유롭고 친환경적인 부분을 연출로 잘 표현했다.

 

내용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악셀과 율리에가 헤어질 때 한 논쟁이다.

성격으로 봤을 때 난 악셀에 좀 더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다. 악셀처럼 이야기할 때가 많다. 무엇이든 분석하고 왜 그럴까 답을 찾으려고 하고ㅋㅋ악셀을 보며 나를 돌아봤다. 나도 누군가에게 질리듯이 말을 했었겠구나ㅋㅋㅋ율리에가 악셀한테 이야기할 때 '너는 내 감정을 모르고 항상 내 감정에 대해서 분석만 할 줄 안다. 그리고 분석할 줄 모르는 나를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 감정을 감정대로 두고 싶어질 때도 있다.'라고 한다. 난 이 말이 되게 좋았다. 때로는 그냥이라는 답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까... 감정 그대로 두는 거지

이 장면에서 또 들었던 생각이 악셀은 이별 전날에도 율리에와 하하 호호했거든 근데 다음날 아침에 연인에게 커피를 건네주다가 이별 통보를 받았다. 내가 악셀이었으면 황-당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의 깊이에 따라 악셀처럼 회유하고 매달리고 그랬을 것 같은데(물론 악셀처럼 헤어지면서 '너 어디서 살게? 후회할 거야'라는 헛소리는 안 할 듯) 또 율리에 입장에서 보면 긴장감이 없는 관계를 왜 이어가야 하는지 의문이고 같이 있어도 별 재미도 없고 일단 정말 바쁜 사람이라 동거하면서도 외로우니까 여러 알고리즘을 돌려보면 헤어지는 게 맞지. 


그리고 아이 때문에 일어나는 의견 차이도 굉장히 현실적이었다. 악셀은 40대 중반인가 그렇고 율리에는 29~30 정도로 나온다. 악셀 주변은 모두 결혼하여 아이가 있고 친구들 모임에 율리에를 데려가 은근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율리에는 너무 싫지. 자기 커리어도 왔다 갔다 하는데 뭔 아이야. 인생에서 필요한 요소가 맞지 않는 타이밍이었다. 영화에서도 악셀이 이 부분을 정확히 짚는다. 오히려 정확히 짚었기 때문에 율리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율리에한테 그냥 덮어놓고 애 낳는 사람도 많다고... 이래서 또래 만나야 해 서로 인생을 지나는 시기가 다르니까 그 부분에서 갈등이 일어남


이 영화 굉장히 이상한 게 율리에 옆에만 가면 남자들 매력이 반감된다ㅋㅋ

악셀도 율리에 옆에 있을 때는 나이 많고 현학적인 의견 교류를 좋아하는 작가 느낌인데 떨어지니까 역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좋네 이렇게 되고 율리에 옆에 에이빈드가 가니까 초반의 매력적인 긴장감이 없어졌음ㅋㅋㅋ그냥 아르바이트 다니는 남자 1 같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결말. 앞에 힘을 잘 줘놓고 흐지부지 끝나는 느낌이었고 악셀의 죽음도 괜찮았는데 에필로그가 걍 좀ㅋㅋ그렇게 안 보여줘도 되는데... 다들 에이빈드랑 오래오래 잘 될 거라는 생각도 안 했을걸

 

우리나라에서 개봉한다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주변인들도 많이 보고 싶어하던데 잘 선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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