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1은 <서브스턴스> (외 <괴기열차>와 <저주>)
이번 영화제는 서브스턴스를 보고자 미드나잇 패션에 도전했고 쉽게 티켓팅에 성공했다. 미드나잇 패션은 이번이 세 번째 경험이다. 첫 번째(2017년)는 블로그에 리뷰가 있고 두 번째는 2019년인데 그때 <남의 떡>, <비바리움>, <블러드 퀀텀>을 봤다. 비바리움이 특히 기억에 남아 리뷰를 쓰려다 귀찮아서 그만둔 기억이 있다. 그때 개막작도 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도 봤는데 글쓰기가 매우 귀찮았던 듯.
서브스턴스는 2024년 77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작품인데, 이것 때문에 본 건 아니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홍보 포스터를 '개미친 영화'라고 홍보했기 때문이다. 개미친 영화는 한 번쯤 봐줘야 하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서브스턴스의 뜻은 물질, 실체, 본질인데 이 영화에서는 본질을 뜻하는 것 같다.
한때 할리우드 최고 스타였던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자신의 전성기가 저물어 가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의 운명을 직접 만들어가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더 근사하고 더 젊고 더 아름다운 분신 ‘수’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수는 “둘은 하나”라는 규칙을 따르지 않으려 하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만든 괴물과 싸우다 어느새 자신도 괴물이 되어버리며, 결국 이 비틀린 풍자적 우화는 피비린내 나는 대소동으로 치닫는다. 안 해보고 무기력하게 있느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신념으로,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사라져가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한다. 그리고 이 어마무시한 바디 호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험하는 기분으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과잉과 극단을 향해 달리는 영화를 보며 ‘이 영화 미쳤어!’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굳이 에둘러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 스타일리쉬한 화면과 과감한 연출력을 뽐낸다. 인생 연기를 펼친 데미 무어를 포함한 최고의 배우진이 강렬한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부국제 홈페이지 설명)
강스포일러와 징그러움 주의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Hollywood Walk of Fame에 자신의 자리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능력있는 연예인이다. 젊을 때부터 현재까지(50대 추정) 출연하고 있는 고정 에어로빅 쇼가 따로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의 쇼를 담당하고 있는 대표 하비(데니스 퀘이드)는 더 어리고, 섹시하고, 다루기 쉬운 새로운 얼굴을 원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듣게 된 엘리자베스는 며칠 고민에 빠진다. 어느 날 굉장히 매력적인 남자 간호사가 건네준 USB를 받은 엘리자베스 스파클. USB에는 'THE SUBSTANCE'라고 적혀 있다. USB 속 영상이 말하는 것은 '더 나은 버전의 나를 꿈꿔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인생을 바꿔줄 신제품 서브스턴스~'이런 내용. 처음엔 먹금했지만 현재의 상황이 위기라고 생각한 엘리자베스는 제품 회사로 전화를 한다.
서브스턴스는 본질의 '나'에게서 더 나은 버전의 '나' 추출하여 그의 삶을 살 수 있는 기술이다. 본질의 '나'와 더 나은 버전의 '나'는 번갈아 일주일씩 살아야 한다. 둘은 동시간을 살 수 없고 기억은 공유하는 듯하며(그 남자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에) 둘은 하나이다. 둘은 하나다!! 이걸 꼭 명심하는 것이 서브스턴스의 핵심이다. 나를 복제한 것이 아닌, 나의 유전적 형질에서 최상을 끌어낸 더 나은 젊은 버전인 것 같다. 그래서 더 나은 버전의 '나'는 자아가 있고 욕망이 있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도 기술의 유지 여부는 본질인 엘리자베스에게 있다. 둘이 합심하면 진짜 잘 살 수 있는데 밸런스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생긴다. 서로를 쟤, 걔 이런 식으로 지칭하는데 회사에서는 끝까지 타인이 아니라 너라고 교정해준다. 둘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른자 두 개 포스터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것만큼 잘 표현한 것은 없다고 생각됨ㅋㅋ
드디어 초록색 액티베이터를 주사한 엘리자베스의 등을 뚫고 더 나은 버전의 '나'가 태어난다. 더 나은 버전의 '나'는 '수'라는 이름을 스스로 짓고 그때부터 대표인 하비의 사랑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한다. 수는 점점 욕심을 부리며 엘리자베스를 고통에 몰아넣고 엘리자베스는 수의 성공을 지켜보며 수와의 괴리를 크게 느끼고 자신을 더 아래로 끌어내린다.
결국 참지 못한 엘리자베스가 결단을 내리지만... 수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ㅋㅋㅋㅋㅋㅋ수가 생기면서 중심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더 쓸 수가 없어서 줄거리는 이렇게 구성했다...
좋았던 점
1. 어렵지 않은 내용
페미니즘 영화라고 이미 이야기를 했고 영화만 보아도 하고 싶은 말이 정확하다. 엘리자베스가 서브스턴스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영화 안에서 자주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유능한 배우지만 세상의 후려치기 때문에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집착의 원인은 간단하다. 세상과 미디어가 젊음과 아름다움, 새 얼굴에 미쳐있기 때문이다.
1-1
엘리자베스에게 꾸준하게 젊음! 섹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늙은 백인 남대표가 나오는데 걔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전부 늙은 백인 남자들이다. 그 늙은 남자들이 '쟨 이제 신선하지 않고 볼 맛도 안나~ 교체해라~'하면 쉽게 교체가 되는 업계. 남대표 및 남투자자들이 수에게 외모 칭찬을 하면서 쇼를 기대한다는 장면이 있는데 광각샷? 볼록렌즈로 촬영한 것처럼 촬영된 웃는 얼굴이 보이는데 어찌나 역겹던지. 여자는 계속 웃어야 한다는 발언까지. 그 백인 늙은 남자 무리들이 지나가는 쇼걸 엉덩이 보면서 한마디 하는 장면도 있음. 처음에 남대표가 게걸스럽게 새우를 크림에 찍어먹나 여하튼 손으로 뭘 추잡스럽게 먹는 입이 클로즈업되는데 그전 씬이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손도 안 씻고 나가는 장면이라 그런지 더욱 웩. 어쨌든 개토 나오는 이런 인물을 꾸준히 등장시키며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
1-2
제 2의 엘리자베스를 찾는 오디션 장면이 있는데 오디션에 그들 기준에 외모가 좋지 않은 사람이 나왔다. 심사위원(모두 남자ㅋㅋ)이 뭐라고 하냐면 가슴이 코에 달리는 것이 낫겠다?(몸은 봐줄만 하지만 얼굴이 별로다 뭐 그런...) 하면서 그들끼리 깔깔 웃는 장면이 나오는데 후반에 진짜 그런 장면이 나오면서 오디션 장면을 오버랩해준다. 진짜 달리니 어떠냐 이런 느낌이었음ㅋㅋ 무심코 여성의 부위를 이야기하며 자기들끼리 웃고 농담취급하는 역겨운 행태
1-3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노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나라 같다. 외모 지적도 경각심이 없음 주름이 늘었네요~ 살이 붙었네요~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발언자는 보통 모를까봐 알려주는 거다, 건강상 문제이지 않느냐 하는데 아마 건강 부분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니 굳이 말 안 해줘도 될 것 같다. 연예인들은 평가당하려고 나오는 사람이니 괜찮지 않으냐 할 수도 있지만, 연예인에 대한 기준은 곧 비연예인에 대한 잣대로 사용되고 연예인은 비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 뿐 같은 인간을 외적인 면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계속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나도 예전에는 영화, 드라마 후기를 쓰면서도 존잘, 존예등 연예인 외모 언급을 했었다. 예전 글만 봐도 종종 나오는데 한 1년 전부터 사회의 다양한 흐름을 보며 나의 태도도 돌아보고 더욱 신중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2. 감각적 연출
포스터만 봐도 알겠지만 굉장히 감각적이다. 폰트, 색감, 음향, 세트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웠다. 영화 안의 미디어는 1980년~1990년 미국 티비쇼 느낌이고 (대충 복고 느낌이라는 뜻) 밖의 현장은 현대 같다. 각 인물이 입고 있는 옷 색감 대비도 너무 좋고 포스터에 쓰인 폰트가 영화관 화면에 꽉 차게 나오는데 그런 연출도 좋았다.
더 나은 '나'를 만들 때 나오는 영상 효과와 음향은 최고 중에 최고다. 불타는 하트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나'의 탄생을 보여준다. 음향 때문이라도 꼭 영화관에 가서 보길 권장한다.
바디호러 장르 특성상 징그러운 장면이 꽤 나오는데 나는 이런 장르도 잘 봐서 괜찮았다. 살이 뚫리고 그걸 바느질하고, 이를 빼고 모든 것을 재조합하고... 이런 효과가 크게 어색하지 않아서 더욱 몰입되었다.
3. 데미 무어와 마가릿 퀄리의 열연
데미 무어 선생님...데미 무어의 유명한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연기가 미쳤음. 서브스턴스는 엘리자베스의 연기가 미쳐야 하는 수준까지 가야 하는데 데미 무어는 그 이상의 연기였다. 특히 동창이 만나자고 이야기할 때 한 껏 꾸미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수의 모습과 본인의 모습을 비교하며 화장을 지우는 장면은 최고의 장면이다. 엘리자베스가 가진 늙음의 혐오가 너무 잘 보이는 장면. 점점 늙어가는 모습과 그 이후의 모습까지 어떻게 소화한 건지... 배우의 고민이 잘 보였던 장면이었다. 데미 무어라 더욱 결정하기 힘들었을 씬들 정말 박수를 보낸다.
마가릿 퀄리는 모르는 배우였다. 그의 어머니가 나온 영화를 더 많이 봤을 정도ㅋㅋ(사랑의 블랙홀 추천!) 이번 영화를 보고 눈에 확 들어왔다. 눈이 돌아서 엘리자베스와 대치하는 장면은 진짜 압권
4. 그외
젊고 예쁜 더 나은 '나'로 돌아가면 이성과의 스킨십 씬이 필수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나오긴 했지만 직접적인 영상은 없어서 좋았고, 곁가지 인물이 없어서 좋았음 완전 주인공 집중 영화임 그리고 남자 동창이 딱 필요할 때 쓰이고 없어져서 굿. 그리고 앞집 남자 한대치고 싶었는데 약간 비슷한 장면이 있어서 ㄱㅊ 얘도 나이 든 엘리자베스한테는 지랄하려고 장전했다가 수인 거 보고 작업 치는 게 너무ㅋㅋ
아쉬운 점
1. 너무 노출이 잦음
장면의 존재의미는 알겠는데 쇼 촬영을 보여줄 때 너무 노골적으로 오래 보여준다. 보는데 속으로 계속 아!! 알겠다고요!! 그만 보여주셔도 된다고요!! 이랬음 쇼걸로 나오는 분들도 그런 복장으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다.
2. 피분수 장면
통쾌하고 좋은데... 엘리자베스가 그런 선택을 하도록 작용한 시스템도 어떻게 큰 피해를 봤으면 어땠을까 싶었음. 엘리자베스는 외모정병 걸려서 '몬스터엘리자(베)수'가 되었는데 결국 대중과 대표는 피 좀 맞고 끝남ㅋㅋ왜 엘리자베스만 고통받고 잼이 되어 청소기에 닦여야 하는지?? 그렇게 기어서 간 곳이 첫 장면인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인 것도 안타까웠음. 엘리자베스의 고통의 피를 뒤집어쓴 게 벌이라면 벌이겠지만 평생 트라우마로 작용하길
3. 503
이건 대한민국 국민이라 어쩔 수 없음 숫자 나올 때마다 집중이 안 되는 걸 어떡함
이번 미드나잇 패션은 <서브스턴스>의 존재만으로 성공했다. 오랜만에 집중이 잘 되는 영화를 봤다.
연출이 미친 고어 페미니즘 영화를 보고 싶다면 서브스턴스 추천드립니다.
여기서부터는 부국제 잡설
영화관을 안 간 지 6개월은 되었다. 영화관 비용도 무시 못할뿐더러 보고 싶은 영화도 없고 영화관은 너무 더럽고 영화관 매너가 장착되지 않은 사람들도 늘고... 마음 편하게 집에서 보자는 생각이 계속 들었기 때문.
그래도 부국제 분위기를 포기할 수 없어서 이번에 가긴 했는데
앞으로도 갈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번 부국제에 굉장히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추모하는 것이 맞는가? 공로상 감의 다른 배우도 있는데~ 여하튼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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