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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프렌치 수프(La Passion De Dodin Bouffant, The Pot-au-Feu)

2023년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봄

스포일러 있음

 

원래 음식 영화를 좋아하고 음식 영화가 또 평타를 치거든요ㅋㅋ그래서 선택했다.

근데 칸에서 감독상을 받았다는거야 이게 웬 횡재

프렌치 수프는 진짜 줄리엣 비노쉬 나온다는 거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줄거리는 19세기 프랑스. 미식가 도댕(브누와 마지멜)과 요리사 유진(외제니, 줄리엣 비노쉬)은 2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하며 신뢰와 사랑을 키워온 사이다. 영화는 도댕을 주축으로 한 미식가 클럽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의 풍경을 30분이 넘도록 정성들여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https://youtu.be/mRi52s_ifjI

너무 정성스럽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였다. 요리 만드는 과정을 통해 눈으로 먹는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20년의 세월을 함께보낸 두 사람의 감정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프랑스의 어느 마을에 있는 평화로운 집과 부엌,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들어오는 자연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줄거리에도 언급을 하고 있지만 처음에 도댕 모임의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데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만드는 것을 다 보여준다. 4명의 사람들이 (한 명은 방금 온 거지만ㅋㅋ) 바쁘게 부엌을 다니면서 각자의 할일을 하는데 그 안에서 보여지는 균형이 있었고 이제껏 이렇게 음식을 해왔겠구나가 느껴져서 좋았다. 외제니와 도댕의 시간에 당연히 요리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요리를 정성스럽게 만드는 장면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영화인 것 같다. 

 

난 처음에 외제니가 도댕 집에서 일하는 주방장 정도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도댕이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하나의 요리사였다. 외제니와 도댕은 같은 집에 살면서 가끔 같이 자기도 하는 연인관계인데 외제니가 결혼을 거부하고 있어서 계속 연인으로 남아있었다. 거부하는 이유는 어디에 얽매이는 것보다 도댕과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요리를 하는 관계가 더 좋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외제니를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도댕. 나중엔 외제니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코스로 대접하는 정성을 보이는데 그릇 위에 반지를 주면서 청혼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자기가 가장 자신있고 좋아하는 음식으로 청혼을 한 것이다. 영화 말미에 외제니와 도댕이 약혼식이 끝난 후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외제니가 나는 당신의 요리사인가요? 부인인가요? 이런 대사였던 것 같다. 도댕은 손을 잡아주며 요리사지요라고 하고 둘이 행복하게 웃는다. 그때 눈물이 살짝 고였다.

 

외제니가 죽고 방황하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요리사를 찾는 도댕을 보면서 '백아절현'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백아가 종자기가 죽고 자신의 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렸듯 도댕도 자신의 요리법과 음식 표현을 탁! 하고 알아줄 외제니를 잃어서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20년간 함께한 파트너를 잃은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영화는 담담하게 그리면서 나아갔다. 이 영화가 보기 편한 것 중 하나는 둘이 평등한 관계라는 것이다. 도댕이 외제니를 일개 고용한 요리사가 아닌 자신의 하나뿐인 요리 파트너로 인정했기 때문에 도댕의 미식가 클럽 사람들도 외제니를 인정하고 존귀하게 대해준다. 존중에서 오는 관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며 내가 아끼는 사람은 타인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항상 배려하고 예의바르게 대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약간 아쉬운건 난 프랑스 요리를 잘 몰랐다는 것이다ㅋㅋ프랑스 요리를 잘 알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프렌치 수프의 영문 제목은 포토푀인데 이게 영화에서 중요한 요리다. 포토푀는 프랑스 가정식 스튜인데 도댕이 유라시아 왕자를 초대해 포토푀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ㅠㅠㅠ도댕은 왜 포토푀를 대접하려 했을까? 아마 화려하고 비싼 재료가 요리의 모든 것이 아님을 알리고 자신과 외제니의 따뜻한 가정에서 만든 사랑의 포토푀를 소개하려 한 걸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엄청 놀라운 사실. 외제니역의 줄리엣 비노쉬와 도댕역의 브누와 마지멜은 실제로 파트너 관계에 있었고 둘 사이에 아이도 있다는 점이다. 헤어진지는 아주 오래된 것 같다. 사적으로는 만날 수 있지만 공개적으로 같이 작품을 하기엔 부담요소가 있었을 텐데 대단하다.

감독님도 알았던 사람이었다ㅋㅋ그린 파파야 향기 감독이더라... 그린 파파야 향기는 내용은 불호였지만 영상은 되게 예뻤다. 색감이 되게 예뻤고 벌레 우는 소리가 여름밤을 잘 표현했다고 느꼈었다

근데 이번 영화는 빛도 너무 잘 쓰고 새소리, 요리하는 소리에 내용도 괜찮아서 추천한다!

 

감상을 놓칠 것 같아서 대충 휘갈겼는데 다시 보고 수정할 수 있으면 하고 귀찮으면 놔둬야 겠다.

(10/9 게시글 따로 분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