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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벌새(House of Hummingbird)

(스포있음)


일요일에 영화를 보려고 예매를 했다.

바로 <우리집>.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고 평도 좋길래 꼭 영화관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늦잠을 잤고 바람처럼 가보려 했지만 결국 지각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멀리 나왔으니까 뭐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다른 영화를 예매했다.





벌새!

작년에 친구랑 부국제 하던 중에 책자를 펴놓고 남은 시간에 어떤 영화를 채워 넣을지 고민을 했었는데 벌새의 평이 매우 좋았던 기억이 나서 선택했다ㅋㅋ작년에는 못 봐서 조금 아쉬웠던 영화였는데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일단 급하게 들어가느라 어떤 내용인지 사전에 전혀 알지도 못했고 들어가기 전에 포스터로 1994년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들어갔다.


그냥 잔잔하게 은희의 1994년을 보여주는 데 공감도 되었고, 같이 화가 났던 적도 있었고, 눈물이 났던 장면도 있었다.


좋았던 점은 1994년의 분위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바쁘게 학원가는 거보다 바람불고 약간 여유로워 보이는 부분

삐삐랑 콜라텍도 신기했다. 처음에 은희가 힙합 차림에 어디로 내려가길래 뭐지? 했는데 콜라텍이었음ㅋㅋㅋ콜라텍 맞겠지...? 청소년 출입 가능한 클럽처럼 보였는데 그리고 엑스를 맺자도 못 알아들었는데 대충 의자매 맺는 거라고 생각했음 선후배를 양언니 양동생이라고 하면서 챙겨주는 그런겈ㅋㅋ

9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94년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지만ㅋㅋ2000년대 초반이랑 결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병원이나 학원 건물이나 이런 건 너무 익숙해서 어린 시절 보는 느낌이 들긴 함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장면이 두어 개 있는데 첫 번째로 오빠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장면이다. 나는 남자 형제가 없지만 충분히 공감이 갔다. 주위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 지금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그 시대 때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 요즘도 신고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그 당시에는 가족의 일이라 쉬쉬하며 숨죽여 살았을 은희가 더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뒤에서는 영지쌤 말을 듣고 참지 않았던 은희가 대견했다. 이 집의 오빠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처음에는 맏아들인가 했는데 나중에 중3으로 나오더라고ㅋㅋ딱 봐도 집의 위계가 아들이 더 높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얠 첫째로 생각했었나 보다. 어쨌든 부모님의 비호아래 동생은 그냥 시켜 먹어도 되고, 폭력을 사용해도 되는 인물로 나온다. 근데 이 집의 유일한 아들이라 외고로 진학해서 후에 서울대까지 가야만 하는 부담감이 있고 나중에 누나가 성수대교에 휘말렸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지 그날 식탁에서 펑펑 울기도 하는 그런 사람으로 나온다. 인간은 여러 면이 있고 입체적이니까. 그래도 은희 때린 건 평생 사죄하며 살길. 이건 얘가 이렇게 될 때까지 묵인해준 부모가 제일 문제임 아들만 둥가둥가하니까 가족 소중한 줄 모르고 나대는 거 난 오빠를 극혐하면서 봤지만 누나 때문에 울 때 나도 눈물이 났다. 가족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후에 살았다는 안도감, 그 사이 마음 졸였던 게 풀리면서 눈물이 나는 감정을 알기 때문에.


오빠 이야기 하는 김에 이 집 첫째 이야기도 같이ㅋㅋ나는 영화 보면서 다른 인물보다 첫째인 수희의 이야기가 너무너무 궁금했다. 저 집에서 사는 첫째는 어떤 역사를 거쳐왔을까? 계속 생각이 나고 배우의 눈빛이 좋았다. 아마 큰 애가 딸이라 큰 기대는 안 했을 것 같기도 하고 기대를 했는데 엇나갔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ㅋㅋ수희는 이미 공부와 담을 쌓았는지 학원도 빠지고 연애하느라 바쁜 인물인데 얘도 안을 보면 많이 곪아있을 듯 자존감이 많이 무너져버린 상태 같았다. 사춘기가 오면서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을 두고 싶고 그쪽으로 빠지다가 아빠에게 걸리면 맞고 더 엇나가고 부모님이랑 사이가 더 안 좋아지고 악순환인 거 내 기준에 수희가 마음에 걸리는 게 많은데 외박도 잦은 것 같고 동생이랑 자는 방에 남친 데려와서 속닥거리고 어쨌든 뭔가 속내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 인물이었음 은희보다 더 힘들 거라 생각함


두 번째로는 영지 선생님의 존재 자체다. 이 선생님 갑자기 등장해서 은희에게 많은 영향을 준 뒤 갑자기 사라지는 인물인데 존재 자체가 너무 좋았던 인물이다. 스타일도 너무 좋고 세상에 통달한 분위기임 한문 선생님인 것도 좋았음ㅋㅋ모든 이치를 깨닫고 은희에게 여러 이야기를 주는 인물로 딱 맞은 것 같다. 특히 영지 쌤이 했던 말 중에 우울할 때 손가락을 펴서 움직여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움직인다가 좋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은희가 손가락을 보며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 마지막에 예상했던 결말이긴 한데 그렇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 가버리는 게 싫어서ㅠㅠ다시 만나면 알려준다고 했는데ㅠㅠ


쓰다 보니 주인공 이야기를 안 했구만ㅋㅋㅋ

영화 보고 기억에 남는 사람은 단연 은희다. 첫 시작부터 강렬한데 모르는 집 앞에서 엄마를 부르며 문을 두드리는 게 왜 이렇게 가슴에 남는지ㅠㅠ그 때부터 조금 짐작했다. 얘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구나. 엄마가 심부름을 보냈으면 문을 열어주는 게 당연한 건데 은희는 엄마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 더 절실하게 느낌. 집에 저런 막내가 있는데 관심이 없다는 게...그래서 은희가 아프지만 아빠와 엄마의 관심을 받는 그 시기가 행복해 보였음

이후에 영지쌤을 만나 위로도 받고 여러 조언도 얻고 선생님께 의지도 하며 중2를 살아가는 은희가 너무 예뻐 보였고 세상의 많은 은희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

또 기억나는 게 감자전 먹는 장면이다. 원래 결핍이 있으면 그걸 다른 행동으로 채우려고 한다고 했다. 은희는 부모님과 가족에게서 얻는 애정의 결핍을 먹는 거로 해결한 건 아닐까 엄마가 구워주는 감자전을 허겁지겁 먹으니까 뭔가 감자전의 바삭한 맛이나 짭조름한 맛을 즐긴다기보다 진짜 채우기 위해 먹는 느낌이어서

은희 역의 박지후 배우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배우의 고전적인 느낌도 영화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았고 촬영할 때 진짜 중학생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ㅋㅋ중학생의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 다른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영화에서 명대사를 꼽자면 너무 많지만 기억에 남는 1등은 유리의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이 말을 내뱉는데 뒤통수가 띵 그래 사랑은 변하는 거야ㅋㅋ딱히 사귀지도, 그렇다고 나에게만 마음 주는 언니도 아닌 은희를 그런대로 많이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에 이런 대사를ㅋㅋㅋ은희가 공원에서 지완이를 따라가지 않았다면 조금 달라졌을까 싶은데

유리 배우가 우리들에 나왔던 지아임 처음 나오는데 너무 반가웠다.


아쉬운 점은 너무 길다는 것. 기니까 은희와 여러 사람의 관계를 비춰줄 수 있었던 거지만 생각보다 길어서(아무런 정보 없이 봤기 때문에 더욱) 막판에는 몸을 조금씩 폈다. 그거 말고는 딱히 없고 잘 만든 영화인 듯

처음에는 아우 길어 이러고 나왔는 데 곱씹으면서 더 기억나고 할 말이 많은 영화다.